[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푸줏간 소년

최민

매일 시끄럽게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건 ‘왕따’와 ‘폭력’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연진’이는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고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이나 러시아의 전쟁은 우리에게 폭력의 기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의식 저 밑바탕에는 동물의 감정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것 같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무리에서 왕따시키고 개돼지 취급하는 사람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쯤 되면 그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인간이 만든 제도나 도덕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인가 보다. 공자가 말한 측은지심은 인간에게 애초에 없었는지 모른다. 영화 ‘푸줏간 소년’을 보면 마음이 헛헛해지면서 불의가 끓어오른다. 

 

아일랜드의 어느 작은 마을, 그곳에 단짝 친구인 프랜시와 죠가 살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장난도 일삼는 개구쟁이들이었다. 프랜시는 마음이 무너져가는 어머니와, 술에 잠겨 더 이상 가장의 그림자조차 지키지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마을을 감싼 차가운 시선들의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만화 속 영웅들과 텔레비전의 환상에 스스로를 맡긴다. 그러나 상상은 오래된 상처를 봉합해 주지 못한다. 마을의 부르조아인 너젠 부인과 사소한 충돌이 벌어진 뒤, 그녀의 비난은 눈덩이처럼 커져 프랜시를 마을 전체의 ‘문제 아이’로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심하게 다투고 조울증이 있던 어머니는 집을 나간다. 프랜시는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안고 돌아오지만, 어머니가 자살한 후였다. 프랜시는 자신을 돼지 같은 놈이라고 멸시하고 무시한 너젠 부인에게 앙심을 품고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가 난동을 부리다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프랜시는 푸줏간에서 일을 하며 무능한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하지만 그런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된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탈출해 죠의 기숙사로 찾아가지만 죠는 그를 외면한다. 

 

친한 친구였던 죠마저 프랜시를 멀리하게 되자 충격을 받은 프랜시는 성모 마리아 축제가 한창인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예전에 일했던 푸줏간을 찾아간다. 프랜시는 어머니가 죽은 것도 그리고 아버지마저 죽은 것도 단짝 친구인 죠마저 자신을 떠난 이 모든 것이 너젠 부인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푸줏간 주인은 성모 마리아 축제가 한창이니까 집에나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프랜시는 웃으며 말한다.

 

“레디 씨, 축제에 가서 세상 끝날 구경이나 하세요. 내가 뒤처리할게요”

 

그러고는 도살용 총과 칼을 챙겨서 너젠 부인의 집으로 찾아간다. 부엌에 숨어 있다가 너젠 부인을 돼지를 도살하듯 잔인하게 토막살인하고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기도한다. 겨우 살아난 프랜시는 오랜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청년이 되어 나온다. 그리고 소년원 시절에 보았던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다시 보게 된다. 청년이 된 프랜시가 성모 마리아에게 말한다.

 

“참 오랜만이군요”

“널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란다. 프랜시”

“이제 좋은 일들은 다 가버렸나요?”

“아니란다. 프랜시 여전히 그대로 있단다. 봐라, 여기 있잖니”
 

성모 마리아는 프랜시에게 아네모네를 건네준다. 프랜시 손에 들려 있는 아네모네 한 송이가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분노와 슬픔으로 뒤범벅된 ‘푸줏간 소년’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결국 파국으로 치달으며 세상과 단절되어 버린다. 이 슬픔의 원인은 무엇일까. 강자가 약자에게 행한 악행이 결국 우리 모두에게 되돌아온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어린시절에 받은 고통은 평생을 간다. 이 영화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절망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한 소년이 삶의 무게를 너무 일찍 알아버려 잔혹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부서져 가는지 보여 주고 있다. 

 

푸줏간은 소나 돼지 등 동물을 도살하는 공간이다. 복수의 끝이 어떤 것인지 편견과 소외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말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으로부터 야기된 광기와 폭력이 흘러드는 과정을 치밀하고 꼼꼼하게 그려낸 닐 조던 감독의 섬세한 우화 같은 영화다. 우리도 어른들에게나 혹은 친구에게 받은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상처는 저 무의식 깊은 곳에서 불쑥 튀어 올라 마음의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주근깨투성이의 프랜시 역을 맡은 이몬 오웬은 천연덕스럽게 어쩌면 그리 연기를 잘하는지 마치 진짜 프랜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에 프랜시는 훔친 돈으로 영화를 보면서 괴물이 나오자 이렇게 외친다. 

 

“덤벼! 괴물아, 원자탄 한 방이면 끝장이야.”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12.09 10:54 수정 2025.12.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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