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사랑이라는 이름의 손아귀엔 소유가 아닌 존재의 평화로

민은숙

에크하르트 톨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집착은 사실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라고 말했다. 이 서늘한 문장은 우리가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해묵은 습관들을 낯설게 비춘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주는 것이 더 행복한 행위라고 정의하면서도 실제론 상대를 잃지 않으려는 욕망에 더 깊이 매몰되곤 한다. 그 욕망은 겉보기엔 따스한 온기를 품은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상대를 꽉 움켜쥔 손아귀의 긴장 상태와 다름이 없다.

 

이러한 사랑의 역설은 드라마 〈러브 미〉 속 도현의 전 연인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도현이 새로운 연인 준경을 통해 상처를 회복하고 삶의 빛을 찾아갈 때마다 격렬하게 흔들린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사랑의 부재가 아니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타자의 자유이다. 

 

인간은 자기 안의 결핍을 채워주던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마치 자신의 존재 일부가 뜯겨 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고통의 심연에서 우리는 상대를 붙드는 집착을 사랑으로 오해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자지르곤 한다.

 

엄밀히 말해 그녀는 도현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얻었던 정서적 안정감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도현은 존재의 중심을 지탱해주던 기둥이었는데, 그것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자 내면은 붕괴의 위기감에 휩싸인다. 이때 나타나는 조종과 통제, 감정적 위협은 표면적으로는 사랑을 되찾으려는 몸짓처럼 보이지만 무너지는 자기 존재의 균형을 붙잡으려는 비명에 불과하다. 톨레의 지적처럼 관계가 고통이 되는 이유는 그 관계 속에서 이미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현을 잃은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를 마주했을 뿐이다.

 

반면 도현과 준경의 관계는 붙잡지 않는 사랑이 지닌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소유하려 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하게 연결된다. 준경은 도현의 과거를 묻지 않고 도현 역시 준경의 마음을 자신의 기준대로 재단하지 않는다. 이런 자유 속에서 사랑은 억압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편안해 보인다. 상대가 내 손아귀 안에 머물지 않아도 관계가 위태롭지 않다는 신뢰가 바로 톨레가 강조한 ‘내맡김’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실체일 것이다.

 

도현의 전 연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연약한 자아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사랑을 붙잡음으로써 그것을 확인하려 시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붙잡는 순간 사랑은 그 고유한 본질인 자유를 상실한다. 붙잡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무관심은 아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내면이 단단하게 서 있다는 증거이다. 그 단단함이 결여될 때 사랑은 자유를 잃고 구속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재의 방식이어야 한다. 소유의 욕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서야 비로소 관계는 고유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타인의 자유를 허락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과 평화를 이루는 일이다. 상대를 향한 굳건한 신뢰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붙잡지 않고도 온전한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작성 2026.01.21 09:31 수정 2026.01.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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