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첫사랑

이순영

‘첫’은 인간에게 영원한 테마다. 누군가는 ‘첫’에 목숨 걸고 누군가는 ‘첫’에 미친다. ‘첫’은 무엇이 되든 간에 마약처럼 묘한 감정을 준다. 이 세상에 나올 때 우는 첫울음, 첫돌, 첫입학, 첫사랑 등 ‘첫’은 깊은 가슴 속에 있는 아직 한 번도 퍼 올리지 않은 우물물 같은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첫’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희곡 등 단골 주제로 쓰이는 것이 바로 첫사랑이다. 하물며 술 이름도 ‘처음처럼’이란 브랜드를 붙여 그 달콤함에 빠져들게 한다. ‘첫’이 주는 순수를 사람들은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첫’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고달픈 인생을 위로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사무치도록 뼛속까지 스며든 추위를 견뎌야 첫봄의 매화 향기를 맡을 수 있듯이 ‘첫’이라는 기억의 창고를 열어야 그 감정과 만날 수 있다. 짜릿하고 매콤하고 쓰디쓰고 달달한 오감을 자극했던 첫사랑의 맛은 인생의 자양분 같은 것이다. ‘첫’의 첫은 광기다.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간다. 광기로 점철된 ‘첫’의 유혹에 넘어가 실패한 인생을 살지 모른다. 미쳐야 미치듯이 ‘첫’은 인생을 모두 걸고 도전하고 싶은 도박이다. 첫사랑, 그 강렬한 감정의 맛에 빠져 버리면 인생을 통째로 날려 보내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강력함이다. 첫사랑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술적인 의식과도 같다. 오감의 문을 열고 마음의 눈을 떠가는 연금술사가 되는 것 같다.

 

젊은 날 괴테에게 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백여 년 전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괴테는 시인이자 작가이며 연극감독이자 철학자이고 정치인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독일 국민에게 정신적 영향을 준 괴테다. 그의 작품을 읽으며 젊은 날이 향기로웠고 정신이 풍요로웠다. 자존심 강하기로 이름난 독일인들에게 괴테는 무한한 자랑거리며 문학의 신화가 되었다. 괴테를 이해할 나이가 되어서 다시 괴테를 읽으니 새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그의 고뇌도 사랑도 문학도 보인다. 

 

그의 시 ‘첫사랑’에서 보듯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다. 사랑 중에서도 첫사랑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마력을 지녔다. 사랑해야 삶을 알게 되고 사랑해야 문학도 풍요로워진다. 인생의 텃밭에 뿌리는 첫사랑의 씨는 그 열매를 알 수 없다. 불행의 열매가 될지 행복의 열매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모르기 때문에 천착한다. 사랑은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다. 문학의 밑거름이며 사상의 열매다. 

 

괴테가 평생을 두고 사랑하며 덧없는 인생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여자만 사랑해야 한다는 금기를 넘어 세상의 모든 여자를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말이다. 실제로도 괴테는 여자에게 천착하며 문학을 했다. 그러니까 사랑은 괴테가 살아가는 힘이며 삶을 끌고 가는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첫사랑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답던 날

첫사랑 그때를

아, 누가 돌려줄 수 있으랴

그 아름답던 날의 오직 한순간만이라도

 

​외로이 나는 이 상처를 키우며

쉼 없이 되살아오는 슬픔에

가버린 행복을 서러워할 뿐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답던 나날

첫사랑 그 즐거운 때를

 

즐거웠다니, 첫사랑이 아름답고 즐거운 나날이라니 멋진 남자다. 다 가진 남자다. 돈도 사랑도 권력도 명예도 다 가진 괴테가 진정한 승리자다. 영감의 원천을 사랑에서 찾는 예술가들이 많다. 한 여인을 사랑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작가들을 보며 사랑은 위대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괴테에게 사랑은 위대했지만, 어느 잡부에게 사랑은 불행했을지 모른다. 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젖이 되듯 말이다. 첫사랑 그 즐거운 한때를 그리워하며 돌려달라고 노래하고 있다. 해석하지 말고 있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인간의 범주 안에서 인간적인 감정에 충실한 한 늙은 남자가 보인다. 그 남자는 괴테다. 독일이 낳았고 세계가 인정한 대문호 괴테이기에 덧붙여 해석할 말이 없다. 

 

‘파우스트’의 그레트헨이 아마 괴테의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천진난만했던 십 대의 괴테에게 평생 첫사랑이라는 이름답고 슬픈 형벌을 준 그레트헨이다. 그녀를 필두로 친구의 아내부터 어머니의 친구까지 그리고 75살에 55살 연하의 여인 등 수많은 여자를 사랑했다. 대단한 편력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기엔 인간적이지 않다. 철학이면 철학, 문학이면 문학, 소설이면 소설, 그림이면 그림 등 다재다능한 한 인간의 생애는 팔십이 넘도록 사랑에 천착하며 독일 문학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괴테와 친하게 지낸 베토벤은 그의 희곡 ‘에그몬트’를 위한 서곡까지 작곡했다고 한다. 또 물리학 천재 아인슈타인이 존경하는 인물이 괴테라며 괴테는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사랑에는 초콜릿이 제격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가 보다. 괴테는 초콜릿 광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마다 초콜릿을 먹었다. 청혼할 때도 초콜릿으로 했다고 하니 그 시절에 누릴 건 다 누리고 산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다산 정약용과 동시대 사람인데 정약용이 유배 가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수많은 작품을 남긴 것에 비해 괴테는 여성들과의 사랑으로 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운명은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시류는 분명 잘 타고나는 것 같다. 괴테는 말한다. 

 

증오는 편파적이지만, 

사랑은 더욱더 편파적이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6.01.30 10:26 수정 2026.01.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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