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나그네의 길, ‘행복한 고통, 즐거운 고생’

홍영수

연일 맹추위다. 이러한 엄동설한에는 일상적인 일들을 마치고 나면 따스한 방,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드러누워 책꽂이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와 책을 읽는다. 추위와 더불어 폭설까지 내리니 먼 거리의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가벼운 산책이나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가까운 곳을 가는 것도 망설이게끔 한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른 나그네가 된다. 그것은 책 속에 보이는 수많은 내용의 풍경들과 처음 보는 낯선 세계의 모습들을 보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활자 속 국내 여행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책 속의 여행을 하면서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한 신비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안개에 싸인 세계를 만나기도 한다.

 

난 호기심이 많다. 그것은 새로운 것, 색다른 것, 처음 보는 것 등등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가 바로 익숙함에서 벗어나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이다. 어쩜 불가능한 가능성을 찾다가 실패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난 집을 나서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 아닌 나를 찾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결코,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떠난다. ‘진리는 나그네’라는 말이 있다. 진리는 불변의 자리에 있는 절대적인 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떠나서 구하고 구하면서 떠나는 것이다. 

 

딱히 목적지도 없이, 가야 할 곳도 없이 혼자 떠나는 길, 그 홀로됨의 나그네는 행복한 고통이고 즐거운 고생이다. 우린 상상의 날갯짓을 통해서 일상적인 세계를 뛰어넘고, 나만의 세계에 감춰진 두꺼운 울타리를 활짝 열어야 한다. 한 곳에 살아가기에, 자칫 나만의 관습과 익숙함에 젖어 있는 정주민이 아닌, 주어진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 사방의 벽에 둘러싸여 갇혀 있는 자는 그 벽 안에 있는 것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갇힌 동굴 속을 뛰쳐나와 저 멀리 더 높이 비상할 때 보이지 않던 세계가 눈동자에 맺히고, 평소에 듣지 못했던 새소리가 귀 고막에 한울림의 가락으로 들릴 것이다. 창조적 인간형인 노마드가 바로 그렇다.

 

‘한 우물을 파라’는 금언이 있다. 정말 그러할까? 여러 우물을 파고 그중 수질이 가장 좋은 우물의 물을 퍼 올려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경험 속에 그 무언가 가슴에 와닿고 감동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새롭게 눈뜨는 것이고 처음 만나는 것이며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닌가. 비록 그러한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보지 못해서 실패할지언정 나그네는 그 길을 걸어야 한다. 특히 창의성을 추구하는 문학, 예술은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떠나야 하는 나그네는 방향이나 목적을 묻지 않는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목이 탈 때는 여기저기 물을 찾아다녀야 한다. 한 곳에 있으면 타는 목마름의 의미를 모른다. 그 목마름, 그것은 오직 길 떠난 자만이 알 수 있는 갈증의 특권이다. 항상 마시는 정수기나 페트병의 물맛이 아닌 전해 새로운 물맛, 

 

임어당은 이렇게 말했다. “참된 여행자에게는 항상 방랑하는 즐거움, 모험심, 탐험에 대한 유혹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의 본질은 의무도 없고 일정한 시간도 없고 소식도 전하지 않고 호기심 많은 이웃도 없고 이렇다 할 목적지도 없는 나그네 길이다. 진짜 나그네는 자기가 이제부터 어디로 갈 것인가를 모르고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여행자는 자기가 어디서 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심지어 자기의 성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예수와 공자도 여행가이다. 그들은 고통받는 타인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종교적인 목표가 있었고, 석가모니는 공주와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에 눈을 뜨면서 부인과 아들을 두고 깨달음의 길을 떠났다. 지금은 성인으로 일컫는 이들의 행적은 하나같이 나그네의 길을 걸었다.

 

자기만의 중심으로, 아집으로 가득 찬 사람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쉽다. 그러한 편견에 도전하는 자가 바로 나그네이다. 나그네가 신고 있는 신발은 구속과 억압이 아닌 자유자재의 신발이다. 어느 곳을 향해서 떠나는 길이거나,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허공을 날며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새처럼 다양한 시선과 새로운 시선을 갖는 나그네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떠나는 길 위에서이다. 그것은 지성의 밀알을 찾기 위한 지식 노마드 길이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6.02.09 10:36 수정 2026.02.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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