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최민

“환자가 죽을 먹으면 만든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그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진심일 거다. 가보지 못한 저세상보다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은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두려운 존재인 죽음 앞에서 촌구석에 사는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은 환자가 죽을 먹으면 그 죽을 만든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공유하며 죽음에게 붙들려가지 않고 살아오기를 바란다. 자본주의의 속도에 휩쓸리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이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먹먹하면서 따뜻하게 다가온다. 영화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란의 시골 마을, 자연의 아름다운 서사는 우리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바람이 우리를 그냥 무심하게 데려다 준다. 잠시 시간을 멈춰놓고 오래된 침묵 같은 언어에 귀 기울이게 한다. 그들의 삶이 스스로 말하도록 내버려두고 우리 같은 문명의 옷을 껴입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흙길에 날리는 먼지들, 흙으로 지은 집에서는 흙냄새가 풀풀 날리고 동물도 사람도 흙과 닮아있다. 흙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 저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자연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다. 문명에 칠갑하고 사는 우리에게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생의 찬미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란 테헤란에서 450마일이나 떨어진 시골,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외딴 마을의 검은 계곡이라고 불리는 쿠르드로 지프 한 대가 들어선다. 붉은 언덕과 나무들을 길잡이 삼아 어렵게 도착한 베흐저드 일행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전화 기술자라고 소개한다. 베흐저드 일행은 마을을 배회하며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면서 하는 일 없이 무언가 염탐하고 다닌다. 베흐저드는 묘지로 차를 몰고가는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보물을 찾으러 온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사실은 이 마을에 사는 최고령 할머니의 장례식을 촬영하러 온 취재팀이다.

 

문제는 최고령 할머니가 죽기 전에 너무 앞질러 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느긋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무심하게도 회복의 기미마저 보이는 최고령 할머니를 보며 베흐저드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초조한 마음으로 할머니의 천국행을 기다리는 보름 동안 베흐저드는 마을 사람들과 우정을 나눈다. 가난하지만 여유롭고 친절하며 서로 나누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도시에서 정신없이 사는 삶에 익숙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어느 노파 집으로 우유를 얻으러 간 베흐저드는 노파의 딸이 우유를 짜는 동안 서로 어색함을 풀기 위해 시를 읊어 준다. 

 

아 나의 짧은 밤 동안

바람은 잎새를 만나려 한다.

나의 밤은 통렬한 아픔으로 가득하나

이런 행복은 나에게 낯설구나

난 절망에 익숙해 있으니

창문 너머로 밤은 떨고 있구나

생명의 온기로 충만한 그대 입술을

내 갈망하는 입술에 맡기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베흐저드는 마을 사람들 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자신을 보며 놀란다. 맨 처음 불순한 마음으로 장례식을 촬영하기 위해 온 목적과는 다르게 변해가는데 언덕 위에서 묘지를 파던 인부가 흙더미에 깔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베흐저드 최선을 다해 구조 요청을 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인부를 구조해 병원으로 보낸다.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던 베흐저드는 할머니의 약을 지으러 간다. 이제 베흐저드는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는데 드디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장례식이 열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베흐저드는 장례식을 찍지 않기로 결정하고 마을을 떠난다. 

 

1999년에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바람에 옷자락이 흔들리는 것처럼 그냥 느끼고 그냥 바라보는 영화다. 바람, 하늘, 구름 들판, 흙길, 가난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살아있는 표정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무언가로 가득 찬다. 이란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민족시인 ‘하페즈’의 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영화 제목으로 쓴 것은 신의 한 수다. 시 제목 하나로 영화가 다 설명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시를 사랑하는 나라 이란답다. 시를 사랑하는 나라 이란은 시 한 두수 외는 건 일상이다. ‘하페즈’의 시 하나쯤 우리도 외워보자

 

사랑하는 이여

내 집에 오려거든

부디 등불 하나 가져다주오.

그리고 창문 하나를

행복 가득한 골목의 사람들을

내가 엿볼 수 있게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6.02.24 10:33 수정 2026.02.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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