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 정부가 용산공원 부지 주택 공급 방침을 내놓은 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24년 12월에 고시한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 4차 변경계획』을 살펴보았다.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13조에 따라 국토부 장관이 수립 의무를 지는 문서이며 후속 조성계획과 실시계획이 딛고 서는 최상위 기준이다.
조경인의 일 가운데 하나는 계획 문서를 읽는 것이다. 도면과 지침과 수치를 읽고 그 땅이 무엇이 되기로 되어 있는지를 판독하는 일. 그 눈으로 이 문서를 읽으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용산공원 계획은 15년 동안 단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공원을 넓히고, 잇고, 여는 방향이다. 이번 방침은 그 궤적에서 처음으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이 글은 그 어긋남에 대한 기록이다.
네 번의 변경, 한 번도 줄어들지 않았다
종합기본계획은 지금까지 네 차례 바뀌었다.
- 2011년 종합기본계획 수립·고시
-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작을 바탕으로 기본설계 착수
- 2014년 1차 변경 - 기본설계 과정의 여건 변화 반영
- 2021년 2차 변경 - 부지 추가·신규 편입으로 공원조성지구 면적 243만㎡ → 300만㎡ 증가
- 2022년 3차 변경 - 임시개방 근거 마련, 부분반환 부지 58.4만㎡ 현황 반영
- 2024년 4차 변경 - 주변 지역과의 연계 강화, 보훈시설 기본방향 설정
변경의 계기는 매번 달랐다. 설계가 구체화되기도 했고, 부지가 돌아오기도 했고, 주변 도시가 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의 방향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공원은 넓어졌고, 열렸고, 주변과 더 촘촘히 연결됐다. 15년 동안 이 계획이 공원을 줄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계획서 부록은 그 방향이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옛 방위사업청과 군인아파트 부지,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미대사관 예정 부지가 모두 공원으로 편입되거나 통합 운영될 대상으로 다뤄진다. 단계별 조성계획의 마지막 4단계에는 미군 잔류부지가 점진적으로 반환되면 공원을 더 확장하는 계획을 세운다는 항목까지 들어 있다.
이 문서의 시간 감각은 그렇게 짜여 있다. 앞으로도 늘어날 것을 전제한 계획이다.
4차 변경계획은 무엇을 하려던 계획인가
2024년 12월의 4차 변경은 이 흐름의 가장 최신판이다. 계획서가 스스로 규정한 성격은 여섯 가지인데, 그중 셋이 이 계획의 성격을 압축한다.
최초의 국가공원 계획
- 역사성·생태성·문화성을 갖춘 국가공원의 비전과 형식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계획
- 첫 줄이 이렇게 시작한다. 공원의 생태성을 강화하여 광역 생태축을 형성하는 계획.
통합적 계획
- 공원과 도시가 서로 주고받는 영향을 존중하는 계획이며, 조경·도시계획·건축·역사문화의 학제간 접근을 표방한다.
이 성격 규정에서 나온 전략이 '남산-용산공원-한강을 연결하는 생태·경관축 형성'이다. 환경계획은 이를 실행 언어로 풀어놓았다.
- 남산에서 한강까지 생태적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공원의 남북을 관통하는 광역 녹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 녹지축은 숲의 형태를 원칙으로 하되, 인공 시설이 불가피하면 배면녹화·옥상녹화로라도 물리적 연결을 유지한다.
- 남산에서 신선한 공기가 막힘없이 유입되도록 바람길을 조성한다.
- - 생태숲은 남산과 사우스포스트 둔지산 일대를 연결해 녹지축의 연결성을 확보한다.
- - 이태원로가 공원의 남북을 끊고 있으므로 상부를 가로지르는 생태통로를 검토한다.
- - 군사기지로 인해 테라스형으로 변형된 지형을 자연스러운 능선형으로 조정한다.
공원시설계획의 첫 원칙은 더 단호하다. 신규 건축물 최소화. 새 시설은 기존 건축물 안에 넣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신축이 꼭 필요하면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경관체계에서는 남산을 바라보는 조망축에 시야를 가로막는 시설물을 두지 못하게 했다.
단계별 조성계획에는 3-2단계에 생태숲과 함께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를 잇는 구름다리를 놓는 일정까지 들어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4차 변경계획은 300만㎡를 보존한다는 전제 위에 그 공원이 공원으로서 낼 수 있는 기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전략 문서다. 생태축을 잇고, 바람길을 열고, 건물을 줄이고, 지형을 되살리고, 주변 도시와 연결하는 일. 여기서 다투는 것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공원을 더 공원답게 만들 것인가'였다.
2026년 8월, 처음으로 그 방향이 꺾이려 하고 있다
이번 방침이 이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네 차례 변경은 모두 공원 사업 내부의 논리에서 나왔다. 설계가 진전돼서, 부지가 반환돼서, 국민 의견이 쌓여서, 주변 도시가 변해서 계획을 고쳤다. 사유가 무엇이든 목적은 하나였다. 공원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
이번은 다르다. 사유가 공원 바깥의 부동산 시장에 있다. 집값을 잡기 위해 공원 계획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공원이 아닌 이유로 공원 계획에 손을 대는 일이다.
만약 5차 변경계획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이 계획사에서 최초로 공원을 축소하는 변경이 된다. 243만㎡에서 300만㎡로 늘려온 궤적이 처음으로 뒤집힌다. 잔류부지가 반환되면 더 넓히겠다고 적어둔 문서 위에, 이미 확보한 땅을 덜어내는 조항이 얹힌다.
이것은 계획의 조정이 아니다. 계획의 전제를 바꾸는 일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법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종합기본계획이 아니다. 아직 5차 변경계획은 없다. 최신 법정계획은 여전히 2024년 12월의 4차 변경이다.
먼저 손을 대는 쪽은 법률이다.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4조 2항은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로 이뤄진 '본체부지' 243만㎡에 주택을 지을 수 없도록 못 박고 있다. 공원 300만㎡ 전체가 아니라 본체부지가 금지 대상이다. 뒤집어 말하면 복합시설조성지구 18만㎡와 옛 방위사업청·군인아파트 부지처럼 공원에 속하되 본체부지가 아닌 구역, 합쳐서 약 60만㎡에는 법의 빗장이 상대적으로 헐겁다.
지난 3월 발의돼 5월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특별법 개정안이 8월 20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핵심은 제25조의2 신설이다. 캠프킴 등 복합시설조성지구에 획일적인 공원·녹지 기준 대신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며, 필요한 경우 일부에 대해 공원 이외의 조성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조항도 담겼다. 서울시는 이를 두고 녹지 규제를 무력화하는 선례가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일 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는 국토교통부 장관과 서울시장의 논의 내용을 지켜본 뒤 반영해 다음 주 본회의에서 상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주가 미뤄졌을 뿐, 법안은 여전히 본회의 문턱에 서 있다.
개정안이 통과돼도 본체부지의 주택 금지는 그대로다. 어린이정원은 본체부지에 속하므로 현행법상 주택 건립이 불가능하고, 국토부도 어린이정원 주택공급이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순서를 보라. 2007년 제정 이후 20년 가까이 유지돼온 공원·녹지 확보 기준이 먼저 헐린다. 그 다음에 계획이 따라온다. 당정협의 뒤 여당 국토위 간사는 아직 논의가 출발도 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 부지에 공급 여력이 있다면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말했다.
법이 바뀌면 계획은 바뀔 수밖에 없다. 종합기본계획은 특별법 제13조에 근거해 수립되는 하위 문서이기 때문이다. 5차 변경계획이 없다는 사실은 안심할 근거가 아니라, 아직 순서가 오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

어린이정원은 여유 부지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앞서 본 조항들은 어떻게 되는가. 심의를 거쳐 건물 하나 세우는 것도 조심스럽게 다룬 문서 위에 수천 세대의 단지가 얹힌다. 바람길을 논하던 자리에 차량 동선과 지하주차장이 들어선다. 숲의 형태를 원칙으로 하라던 녹지축이 옥상녹화로 대체된다. 능선형으로 되돌리기로 한 지형을 다시 깎고 다진다.
논의의 출발점으로 거론되는 곳은 용산어린이정원 약 30만㎡다. 그러나 계획서를 보면 이 땅의 성격이 분명하다.
2022년 2월부터 6월까지 반환된 58.4만㎡ 가운데 국방부 인근 약 30만㎡를 정비해 2023년 5월 문을 연 곳이 어린이정원이다. 계획서의 용어는 일관되게 '임시개방'이다. 부분반환 부지 중 개방 가능한 구역에 위해성 저감조치와 리모델링을 거쳐, 국민이 미리 밟아볼 수 있게 열어둔 공간이라는 뜻이다.
용산기지 243만㎡ 가운데 2024년 9월까지 반환된 면적은 76.5만㎡, 31.5%에 불과하다. 계획서의 시간 범위는 기지 반환 완료 시점을 N으로 놓고 N+7년까지다. 이 사업은 아직 반환 이전인 1단계에 머물러 있다.
어린이정원은 공원이 되지 못한 잉여지가 아니다. 아직 순서가 오지 않은 공원 부지다. 임시로 열어둔 문을 보고 "여기는 비어 있으니 쓰자"고 말하는 것은, 계획을 읽지 않았거나 읽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다.
계획에는 '개발 여유분'이 없다
계획서가 개발 대상으로 지정한 곳은 복합시설조성지구 17만 9,070㎡, 정비구역 전체의 1.6%뿐이다. 캠프킴 48,399㎡, 유엔사 51,753㎡, 수송부 78,918㎡. 계획서는 이 세 곳의 존재 이유를 감추지 않는다.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부지다.
그 구조를 보면 2007년 국방부와 LH는 기부 대 양여 협약을 맺었다. LH가 기지 이전 비용을 조달하고, 그 대가로 산재부지 소유권을 넘겨받는 방식이다. 협약 가액은 약 3조 4천억 원. 부지별 추정가액은 캠프킴 1.2조, 수송부 1.1조, 유엔사 0.8조, 니블로배럭스 0.3조이며, 유엔사와 니블로배럭스는 2016년과 2017년에 민간 매각이 끝났다.
조경인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용산공원 300만㎡는 공짜로 얻은 땅이 아니라, 그 바깥 17만㎡의 개발수익 3조 4천억으로 값을 치른 땅이다. 공원 안을 비우기 위해 공원 밖을 판 것이다. 이것이 20년간 유지된 거래의 골격이다.
그런데 오늘 국회에 오른 개정안이 겨냥한 곳이 바로 이 17만㎡다. 이미 상업지역 수준의 고밀 개발이 허용된 부지에서, 이번에는 공원·녹지 확보 기준마저 낮추겠다는 것이다. 공원 안을 지키기 위해 내준 땅에서, 그 대가로 남겨두기로 했던 최소한의 녹지까지 거둬들이는 셈이다. 거래의 바깥쪽 조건이 먼저 헐리고 나면, 안쪽 조건을 지킬 명분은 얼마나 남는가.
나머지 구역은 어떤가. 공원주변지역 72.4%는 남영동·한강로동·보광동·서빙고동·이태원·한남동·후암동·이촌동 등 기존 시가지다. 계획서가 여기에 부여한 역할은 개발이 아니라 관리다. 권역별 기본원칙을 보면 고층 개발로 인한 경관 사유화 최소화, 남산 조망 확보, 저층 구릉지의 자연환경 보존, 구릉지 경관을 고려한 건물 높이 관리다. ‘여기에 지어라’가 아니라 ‘여기도 함부로 짓지 마라’에 가깝다.
즉 이 계획은 1.6%의 개발 창구를 정밀하게 설계해 놓고 나머지 전부를 조성 또는 관리 대상으로 묶은 문서다. 여기에는 남는 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래서 문제는 한 겹 더 깊다. 공원 한복판이 고밀 주거가 되면, 주변지역의 높이와 경관을 규제할 명분도 함께 사라진다. 공원 안에는 아파트를 세우면서 해방촌 구릉지의 층수를 왜 묶느냐는 반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합계획의 한 축이 무너지면 다른 축도 함께 흔들린다.
토양 - 계획서가 전제한 정화의 수준
토양에서도 계획서는 중요한 단서를 준다.
환경계획은 오염 정화를 공원 조성 단계에 맞춰 점진적으로 실시하도록 설계했다. 정화가 끝난 구역부터 정밀 측량에 들어간다. 이 일정 자체가 공원을 전제로 짜인 것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시설부지 오염토양치환' 조항이다. 계획서는 기지 내 건축물 부지의 토양이 오랜 기간 다져져 식물이 정상적으로 자라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식물 생육에 필요한 심도까지 절취하며 도로 포장층은 기존 토양이 드러날 때까지 걷어내도록 했다.
조경 실무자라면 이 문장의 무게를 안다. 다짐된 땅을 되살려 나무를 심는 일은 이 공원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아파트를 지으면 그 땅을 다시 다져야 한다. 걷어내기로 한 포장을 다시 깔아야 한다. 계획서가 회복하겠다고 적어둔 것을 정확히 반대로 되돌리는 셈이다.
정화의 기준도 다르다. 계획서의 위해성 관리는 공원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다. 365일 정주하는 주거지의 기준은 그 위에 있다. 그 비용과 기간을 계산한 문서는 적어도 이 계획서에 없다.
훼손은 개발의 명분이 될 수 없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용산공원 전체의 녹지를 밀고 주택을 짓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며 그린벨트로서 가치를 이미 상실한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들에게 주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조경인으로서 이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용산기지는 120년간 군사시설로 쓰인 땅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덮이고, 다져지고, 기름에 절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훼손돼 있다. 그것은 이 부지의 결함이 아니라 출발 조건이다.
계획서는 바로 그 조건에서 시작한다. 포장을 걷어내고, 다져진 토양을 식재 심도까지 절취하고, 테라스형으로 깎인 지형을 능선형으로 되돌리고 복개된 만초천의 물길을 되살린다. 국제공모 당선작의 이름이 'Healing'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사업의 본질은 훼손된 땅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미 훼손됐으니 개발하자’는 논리는 사업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한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용산기지의 거의 전부가 개발 대상이 된다. 훼손 정도가 심할수록 개발 명분이 커지는 셈이니, 회복을 위해 만든 계획이 회복을 포기할 근거로 뒤집히는 것이다.
녹지의 가치는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위치와 잠재력에서 나온다. 남산과 한강 사이의 이 자리는, 지금 콘크리트로 덮여 있든 아니든, 서울에서 그 축을 이을 수 있는 유일한 땅이다. 조경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훼손된 땅에서 잠재력을 읽어 되살리는 일. 훼손됐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면 우리는 애초에 이 직업을 가질 이유가 없다.
15년이 쌓은 것 - 법정계획의 무게
계획서에는 이 사업의 절차적 축적이 숫자로 남아 있다.
- - 2021년 국민참여단 300명의 활동과 '7대 제안'
- - 2022년 시범개방 당시 경청우체통으로 모인 국민 의견 3,029건
- - 임시개방 이후 2024년 9월까지 방문객 약 100.2만 명
여기에 2012년 국제설계공모와 2011년 종합기본계획, 네 차례의 변경계획이 얹힌다. 계획서가 잡은 공원 조성비는 약 2조 1,400억 원, 조성 후 연간 관리운영비는 약 250억 원에 콘텐츠 운영비 100억 원 이상이다. 계획서는 이 비용의 부담 주체를 국가로 명시하고, 부족분은 민간의 기부·기증과 후원으로 메우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적었다. 공원 안에 아파트를 지어 그 수익으로 공원을 만든다는 논리는 이 문서 어디에도 없다.
법정계획의 무게란 이런 것이다. 부처가 바뀌고 장관이 바뀌어도 유지되기 때문에, 후속 계획과 민간 투자와 국민의 신뢰가 그 위에 쌓인다. 15년 동안 네 번을 고치면서도 방향을 지켰기에 이 계획은 신뢰를 얻었다.
자신이 여덟 달 전 고시한 계획을 부동산 대책 하나로 뒤집는다면 앞으로 국토부가 고시하는 어떤 계획을 누가 믿고 딛겠는가. 이것은 용산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국토계획 체계 전체의 신뢰 문제다.

우리는 이 문서를 읽는 직능이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마음이 무거운 대목은 따로 있다.
이 문서는 조경의 언어로 쓰여 있다. 녹지체계와 수체계, 경관체계, 미기후와 바람길, 자생수종과 향토수종, 훼손지 복구와 지형 회복, 양묘장과 생태 모니터링. 계획서 스스로 학제간 융복합을 표방하지만, 이 계획의 뼈대를 이루는 사고는 명백히 조경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서가 지켜지는지를 감시할 일차적 책임도 조경에 있다. 계획서를 펴고 조항과 방침을 대조해 어디가 어긋나는지 짚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다. 그것이 이 직능의 고유한 전문성이고 사회가 우리에게 자격을 준 이유다.
그런데 방침이 발표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학회와 단체의 공식 성명은 보이지 않는다. 개별 연구자의 기고와 발언은 있었지만 직능 단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경이 계획서를 읽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조경은 계획을 세우는 직능이 아니라 세워진 계획을 그리기만 하는 용역이 된다. 15년간 국제공모와 수백 편의 연구로 만들어온 문서가 뒤집히는데 침묵한다면 훗날 무슨 자격으로 공원의 가치를 말할 것인가.
방향을 지키는 일
필자는 주택 공급의 절박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계획이 15년간 지켜온 방향을 부동산 대책 하나로 꺾는 것이 옳은지를 묻는 것이다.
용산공원 계획은 완결된 마스터플랜이 아니다. 계획서 스스로 밝혔듯 여건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장기 전략계획이다. 그래서 네 번을 고쳤다.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이 계획의 미덕이었다. 다만 그 유연함은 공원을 더 잘 만들기 위한 유연함이었지 공원을 그만두기 위한 유연함이 아니었다.
순서도 뒤집혀 있다. 지금은 계획을 고칠지 논의한 뒤 법을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먼저 열어놓고 계획은 나중에 맞추는 방식이다. 국토계획에서 이 순서가 뒤집히면 남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추인이다.
논의를 하려면 계획서를 펴 놓고 하자. 어느 조항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남산에서 한강까지 잇겠다던 생태축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정주 기준의 정화 비용은 얼마이며 누가 부담하는지, 3조 4천억의 기부 대 양여 구조는 어떻게 정산되는지.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는 계획은 계획이 아니라 발표일 뿐이다.
채우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다. 15년 동안 지켜온 방향을 계속 지키는 일이 훨씬 어렵고 그래서 그것이 국가의 실력이다.
100년 뒤 서울 시민은 2026년의 이 결정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이 문서가 지켜진 계획으로 남기를, 그리고 그 기록에 조경계가 침묵하지 않았다는 한 줄이 함께 남기를 바란다.
[ 정종일_본지 전문고문위원, 해찬솔(주) 대표이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