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 잠시 시골에 내려갔다. 수평선 허리춤에 노을이 매달리고, 논다랑이에 산그리메가 가만가만 내려오고 있었다. 밤이면 적막강산이 된 자그마한 시골의 농촌 마을, 나도 여기 있다는 듯 초승달이 입을 벙긋하며 떠오른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보는 초승달을 보니 곽말약의 <초승달>과 황진이의 <詠半月> 생각났다. 곽말약은 초승달을 낫으로, 황진이는 빗으로 비유했는데, 사물을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시선은 다른 것일까? 그렇다면, 양성(兩性)의 성을 넘어서 바라보는 반달은 어느 모습으로 비추어져 보일까?
그리고 대문 밖에서 한참 동안 하늘바라기를 하는데 갑자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뒤안 댓바람에 실려서 들려왔다. 판소리 <춘향가> 중 한 대목인 ‘쑥대머리’였다. 동네의 소리꾼에 대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초저녁 먼발치에서 들려오는 수리성의 창법에 귀를 호강시키는 저녁이었다. 그러면서 떠올려지는 것은 <춘향전도 10폭 병풍>이었다. 그것은 춘향전의 내용과 춘향전의 판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회화일 것이다. 바로 소리와 회화의 만남이다.
미국의 음악 교육자 고든은 음악을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음악과 소리를 직접 느끼고 이해하면서 음악과 경험적으로 관계를 맺는 능력을 향상하려 했고, 따라서 그에게 음악은 이해하고 즐기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오늘날 점점 모호해지고 경계를 넘나드는 분야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소리와 시각, 공간 등의 관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분야가 바로 예술 분야가 아닌가 싶다. 시각 영역과 음향 영역 간 상호 침투와 교류에 대한 시도가 지금도 끊임없이 세분화, 다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곡가들이 회화로부터 영감을 얻고, 화가들 또한 자신들의 작업을 위한 근원이나 감각적인 섭취를 위해 악보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현실적인 교육열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그와 함께 문학, 예술 분야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체험적 인생관을 확대해 주는 한편 감정, 정서, 창조성 등의 함양에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최근에는 학제간 연구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 융합으로 흐르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학과 미술, 미술과 음악, 음악과 미술 등에서 실제의 사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림을 보고 작곡했을 때, 이를 통해 음악과 미술과의 접목 효과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그 예를 보자.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그의 절친인 건축가이면서 화가인 알렉산드로비치 하르트만의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물론 둘은 인간적으로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그러나 하르트만이 39세의 나이에 동맥류 파열로 급사했을 때 이에 충격을 받은 무소르그스키는 하르트만의 유작들을 모아 추모 전람회를 개최했고 이 전시회는 그가 그린 수채화, 데생, 유화 그리고 무대배경과 의상 디자인, 건축 설계 스케치 등 다양한 장르가 망라되었다. 이렇게 하르트만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작곡한 <전람회의 그림>은 많은 작곡가들에게 2차적 영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칸딘스키 또한, 회화도 음악처럼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하면서 그는 화폭에 점, 선, 면으로 음악의 리듬을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이 예술을 통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결과 칸딘스키에게는 음악이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렇듯 이들에게 음악과 미술을 끊임없이 융합하는 작업을 추구했다. 혹시 무소르그스키나 칸딘스키가 만약에 첼로를 만든다면 그들이 생각한 빛과 색은 어떠한 것일까?
그렇다. ‘음악은 음악이고 그림은 그림이다’가 아닌 그림과 음악이 함께 공존하는 Gray Zone에 서서 영감을 얻기 위해 방황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미리 결론을 내려 마무리하기보다는 끝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창조적인 상상력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 아닌 이것과 저것 양극단의 차이를 횡단하면서.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