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은 이상하게 묘한 끌림이 있다. 가장 더운 한여름이지만, 문득 겨울을 떠올려도 이상하지 않고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8월이다. 추억이나 기억 혹은 기적과 맞닿아 있을지 모를 8월을 인생의 가장 깊숙한 어느 순간 속으로 들어가는 문 같은 것은 아닐지 하고 가끔 생각해 본다. 8월은 영어로 ‘August’이다. ‘August’의 어원이 ‘아우구스투스’인데 존엄하고 성스러운 존재라는 의미가 있다. 8월에 대한 묘한 끌림은 어딘가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고 나도 무의식적으로 의미가 부여되었는지 모른다.
영화 ‘지구에서의 8월 32일’을 보았다. 1998년 만든 영화를 2026년에 봤으니 무려 28년이 지나고 나서 본 셈이다.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이 영화는 8월이라는 숫자가 주는 묘한 끌림이 있다. 거기다가 8월 30일도 아니고 8월 31일이라니 달력에 존재하지 않은 날짜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는 것일까. 아마 8월 32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적 같은 순간이거나 절대 오지 않을 날에 대한 간절함을 숨겨둔 것일지 모른다.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의 데뷔작인 ‘지구에서의 8월 32일’ 속으로 들어가 보자.
평범한 패션 사진작가 시몬은 어느 날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죽음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 경험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흔들어 놓는다. 그전까지는 일과 성공, 일상의 반복 속에 살아왔지만, 사고 이후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언제 자신이 지구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꼭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을 찾는 대신 가장 가까운 친구 필립을 찾아간다. 시몬은 필립에게 자신의 아이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제안한다. 갑작스럽고도 황당한 부탁에 필립은 당황하지만, 필립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시몬에게 아직도 감정이 남아 있음을 깨닫지만, 의미 없이 아이를 갖는 것은 못 할 짓이라며 필립은 사막으로 가서 아이를 갖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묘한 조건과 약속 속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들의 여정은 캐나다의 도시와 황량한 사막에 도착하게 된다. 시몬은 광활한 사막을 마주하게 되자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존재의 의미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게 되고 맥이 빠져 버린다. 시몬이 말했다.
“이곳에선 별로 하고 싶지 않네”
“......”
“그래도 좋네”
아이를 갖기 위한 섹스를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되자 택시 기사가 두 사람을 데리러 오고 양심 없는 택시 기사는 400달러를 더 줘야 택시를 태워준다고 협박한다. 그런 택시 기사와 다투다가 두 사람을 사막에 놔두고 그냥 가버린다. 두 사람은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게 되고 여전히 시몬을 사랑하고 있던 필립은 감정이 배제된 시몬의 계획에 더 이상 동참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편지를 쓴다.
“넌 내 인생의 여자야. 널 사랑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해, 너와 잔다면 난 망가져 버릴 거야.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아. 마지막 부탁 하나만 들어줘. 운명의 장난을 피하고자 이런 제안을 할게. 중앙아메리카, 세인트 로랑 대로 동쪽, 인도, 뉴욕, 비블로스는 내가 가질 게 나머지 지구는 다 네가 가져 꽤 공평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온 필립은 동네 양아치들에게 이유 없이 맞게 되고 뇌사상태에 빠지고 만다. 시몬은 필립을 찾아가 이제 너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겠노라고 필립의 귀에 대고 말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지구에서의 8월 32일’은 아이를 갖기 위한 계획 너머에는 삶과 죽음이 어떤 형태로 우리를 찾아오는지 묻고 있다. 우정이란 무엇이며 사랑은 어떤 경로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욕망의 공허함과 허황됨으로 방황하는 인간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삶은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 과정을 통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몽환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하얀 사막에서 시몬과 필립의 방황은 우리네 마음과 닮아있다. 우리도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어느 순간에서 공허하며 덧없는 인생과 마주하곤 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도 달력에는 존재하지 않는 날짜가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날이고, 어떤 시계도 가리키지 않는 시간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 삶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말한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감각이라고. 아무것도 잃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가장 조용한 소멸일 것이다. 사고 이후 시몬은 갑자기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단순한 모성 본능이 아니다. 생명을 낳고 싶다는 욕망이다.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절규다. 죽음의 그림자를 본 뒤에야 비로소 삶을 갈망하게 된 것이다.
“당신은 지금 정말 살아 있는가?”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