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미네르바』 및 2022년 『예술세계』 한국예총이 주최 등단 10년 미만 작가 대상 신인상으로 데뷔한 이종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똥글똥글한 것들』이 2026년 <충남문화관광재단>에서 주어진 문학창작기금으로 <이든북 시인선175>로 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시집은 제 1부 「우린 봄을 아주 믿기로 함」(21편 수록)을 비롯하여 제 2부 「종이비행기는 비상을 꿈꿨어」(20편 수록), 제 3부 「아날로그 방식의 한 여인이 내 술값 치르고 떠났지」(19편 수록), 제 4부 「숨은그림찾기」(17편 수록) 그리고 제 5부 「그리고 하천일번지」(20편 수록)등 소제목으로 제각기 내놓은 신작으로 모두 5부 97편으로 갈무리하여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시인은 그가 언급한 ‘시인의 말 -배달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에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어린 나는 고향마을에서 신문을 배달했다. / 누군가의 아침을 대신 열어주는 일이 /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 그 감각은 오래 남아 / 말과 생각을 전하는 일에도 따라왔다. // 대학 시절, 공부와 학생운동 속에서 / 말이 사람을 움직이기도 / 다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 방학이면 부두에서 컨테이너를 하역하며 / 수출·입 면장을 다뤘고 / 졸업 후에는 신문사 출판 현장에서 / 시사를 전했다. / 무엇을, 어떻게 전할지에 대한 고민은 / 그때부터 이어졌다. // 서른을 지나 정당에서 상근하며 /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 관계를 맺는 법을 익혔다. / 그 과정에서 정치는 / 구호보다 전달의 태도에 가깝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 불혹을 넘기고 고향에서 이삿짐을 나르며 / 지방의원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전했다. / 몸으로 옮기고 손으로 건네는 시간 속에서 / 내 삶은 늘 배달에 가까웠다. // 이 시집은 / 그동안 내게 주어졌던 / 여러 형태의 배달을 / 서정으로 엮어 / 다시 건넨다.”
이처럼 신문 배달, 항만 노동, 언론 활동, 정당 업무, 지역 의정 활동을 하나의 배달 서사로 엮어낸다. 시인은 말과 글로 사람을 움직이고 다치게 할 수 있음을 배우며, 전달의 책임과 태도를 삶의 중심에 뒀다. 결국 시집은 과거의 경험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건네는 삶이 어떻게 정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시적 성찰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귀가를 재촉한다.
“그가 귀가한다
똥글똥글한 것들을 들고
집에
잔뜩 들어선 시들
나는 귀가한다
똥글똥글한 것들을 들고
집에서
그와 만나는 나의 시들”
▲ 시집 『똥글똥글한 것들』 ‘이든북 시인선175’ 표지
똥글똥글한 것이 허름해진 바지 속, 헐거워진 호주머니를 붙들고 늘어진다 신림동 시장 초입부터 이 가을 행상하는 아낙에 내맡겨져 자기 자신부터 데려가 달라고 밤 가시와 껍질 훌렁 벗어둔 초저녁, 달밤 꾸러미가 꽉 찬 시장 구경을 동여매듯 텅 빈 장바구니 끌어당긴다 똥글똥글한 것이 이 시월, 중략쯤에 씨 없는 단내 풍기며 퀭한 눈 비벼댄다 똘똘하게 영근 샤인머스캣과 챙기어 줄 사랑이 부대끼면 터질 듯 맨살끼리 접착 꺼리는 홍시가 과일가게 좁다란 매대 위, 방앗간 참새가 아양 떨 듯 내 손의 향방 잡아 이끈다 똥글똥글한 것이 홀쭉히 말라가는 이 하루하루, 참견하듯 캐묻는다 소비기한 지나거나 다 떨어져 홀가분한 저 허약해져만 가는 방이 적적하지는 않으냐고 장터 끄트머리, <온누리마트> 옆구리에 기대선 달걀 한 판이 오지랖 섞인 염려 내세우며 알알이 연민 앓는다 한가득히 담긴 장바구니가 집으로 돌아가면, 똥글똥글한 것이 한 사람으로 누워있다 내 발자국으로 버텨온 헤아릴 수 없는 수발 빠져나오는 골목길에 대면한 우주 순환과 마주한 저녁 밥상 가까이 부쩍 야위어져만 가는 이 흐느낌 너머 한 사람의 파래지고 마른 입술이 되레 속절없이 내뱉는 말, ‘밥맛이 없으면 입맛으로 먹는 거야, 내 걱정하지 말고 챙겨서 어서 들어’ -시, 「똥글똥글한 것들」 전문 |
■ 둥근 사물에서 시작해 둥근 마음으로 완성되는 가족 서사
―평범한 시장 풍경을 통해 일상의 헌신과 사랑을 깊은 울림
이종근의 시, 「똥글똥글한 것들」은 시장에서 만나는 둥근 사물들을 매개로 생명의 순환과 가족애를 형상화한 서사를 줄기로 쓰인 시다. 시를 이끄는 '똥글똥글한 것'은 밤, 샤인머스캣, 홍시, 달걀 같은 둥근 먹거리에서 출발하지만, 장바구니와 밥상을 거쳐 마침내 한 사람의 존재와 마음으로 확장한다. 이 반복 이미지는 단순한 사물의 나열을 넘어, 삶과 사랑이 순환하는 원형(圓形)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시 속에 드러난 시장은 흔히, 생계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서로의 삶을 보듬는 공동체의 풍경이다. 허름한 호주머니와 행상, 과일과 달걀의 의인화는 결핍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온기를 전한다. 장을 보는 일은 소비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피고 돌보는 삶의 의식으로 승화한다.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정서를 가장 깊게 응축하는 대목이다. 애써 장을 봐 온 화자가 병든 가족을 돌보는 듯하지만, 정작 야위고 파래진 입술의 그 사람이 “밥맛이 없으면 입맛으로 먹는 거야, 내 걱정하지 말고 챙겨서 어서 들어.”라고 말한다. 이는 돌봄의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는 역설인 동시에, 어제 화자가 건넸던 위로의 말이 오늘 다시 돌아오는 사랑의 순환으로도 읽힌다. 말은 돌고, 마음도 돌며, 삶은 그렇게 서로를 향해 이어진다.
결국 ‘똥글똥글한 것’은 둥근 사물의 형상을 넘어 생명과 가족애, 기억과 위로가 하나의 원을 이루며 이어지는 삶의 상징이다. 평범한 시장 풍경 속에서 가장 소박한 일상의 헌신을 길어 올려,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 낯설고 도드라진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길어 올린 언어의 결실
이번 시집 『똥글똥글한 것들』 작품해설에서 이대영 문학평론가는 “시인은 자신을 시에 종속된 ‘아낌없이 마른 부역자’라 말한다. 그는 익숙한 길을 따르지 않고 흔들리는 창작 과정에서, 아픔과 실험을 동반한 시 세계를 구축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아프게 헤엄치는 시’라고 말한다. 창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이 창발의 과정을 거쳐 희소의 가치를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형식의 곳간에 걸린 문고리를 풀어 시적 메커니즘을 한껏 구사하기도 하며, 문장을 둘둘 말아 올려 빚어낸 독특한 표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창발에 대한 의욕은 작가 의식의 갈망이다.”라며 또한 “시인의 작품에서 발현되는 쉼표와 행간의 호흡, 동음이의어의 감각적 활용, 비틀고 풀어내는 비유, 명사형 어미가 만들어 내는 함축과 여운, 그리고 풍자와 익살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작품은 진중하면서도 경쾌한 울림을 전한다.”라고 비평했다.
그리고 덧붙여 “세계와의 내밀한 교감을 통해 자신을 다독이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언어의 선물이다.”라며 “이제 이종근 시인은 더 이상 문단에서 촉망받는 ‘하류’가 아니다. 봄을 온전히 봄으로 느끼며 자유롭게 ‘종이비행기’를 날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라고 말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