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우르르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데 오늘은 조금 이른 탓인지 아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열대여섯 명은 족히 됩니다.
신호등 때문에 항상 이 건널목 앞에서 차를 멈춥니다.
그리고 건널목을 건너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혼자 뛰어가는 아이, 엄마손에 끌려가는 아이, 발걸음을 끌며 지나가는 아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보면서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장면도 있습니다.
친구를 기다리다 손을 잡고 웃다가 재잘대며 건너는 아이, 아빠 손을 잡아끌며 앞장서는 아이를 볼 때면 저도 덩달아 신납니다.
또 있네요. 앙징맞은 장화를 신고 예쁜 우산에 들고서 강아지 뛰듯 종종걸음으로 내달리는 작은 아이들을 보면 비가 오는 게 고맙기까지 합니다.
건널목에는 아이들만 지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학부모도 건너고, 중학생도 건너고, 군복입은 청년도, 직장인도 길을 건넙니다.
오늘도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그들 틈에 서 있는 저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습니다.
지금 저도 길을 건너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인 것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청년기를 건너서 중간항로*를 지나 이제는 정부에서 만들어낸 신중년기(50세~65세)를 건너고 있습니다.
저는 60대를 막 건너기 시작했고, 인생 2막, 재취업기를 건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익숙한 세상에서 낯선 세상으로, 집안의 가장에서 가족의 반려자로,
성장에서 노화의 단계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살고 죽는 문제로 이행하는 건널목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무수한 건널목의 연속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설레임으로 건너는 길도 있고, 두려움으로 마지못해 건너야 하는 길도 있습니다.
그래도 건널목을 건너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만약 건널목을 거부하면 그 순간 모든 게 멈춥니다.
성장이나 변화는 고사하고 퇴보하기 십상입니다.
건널목을 건넌다는 것은 두려움이자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길 건너에서는 어떤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서 두렵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서걱이는 이 길도 곧 끝이 드러나고 새 건널목으로 연결될 것이기에 위안이 됩니다.
오늘도 일터에 도착하려면 몇 개의 건널목을 더 건너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건널목을 더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건너야 하는 길이라면 힘든 길도 참아내고, 두려워도 소중하게 수용하려 합니다.
건널목이니까요.
*제임스 홀리스, 김현철 역. 《내가 누군지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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