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김종기 해군 대령과 윌리엄 해밀턴 쇼 미국 해군 대위를 ‘2026년 9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국가보훈부가 밝혔다.
김종기 대령은 해군사관학교 1기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9월 15일 해병대 제2대대장(당시 소령)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그는 인천에 상륙한 후 인천 시가지 소탕작전에 나섰으며, 9월 20일 한강을 건너 서울수복작전에도 참전했다. 9월 24일 서울로 진입, 동국대·동대문·안암동·미아리를 따라 진격하여 중앙청 확보에 큰 공을 세웠고, 이후 북한강 일대로 진출해 10월 8일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해군으로 복귀한 김종기 대령은 덕적도 주둔대장으로 근무하던 1951년 2월 10일,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여 인천 해안에 상륙했다. 이를 통해 인천을 재수복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는 서울 재수복과 38도선 진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혁혁한 공훈을 기려 1954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는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1922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한국 이름은 서위렴(徐偉廉) 2세이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미국으로 귀국해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 지리에도 익숙했던 그는 미 극동군사령부 해군정보장교로 임명되어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여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다.
이후 미 해병대 5연대에 배속되어 서울수복작전에 참전했으나, 1950년 9월 22일 후방 정찰 임무를 위해 녹번동에 접근했을 때 매복하고 있던 적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가 전사하고 일주일 뒤 서울이 수복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묘원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 공로를 기려 1956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