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발 327.4m는 숫자만 보면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강원도 홍천군 서면의 팔봉산(八峰山)에 올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홍천강이 산을 휘감아 흐르는 가운데 여덟 개의 암봉이 병풍처럼 솟아 있고, 봉우리마다 기암과 절벽이 이어진다. 홍천군도 팔봉산을 ‘낮지만 얕볼 수 없는 산’으로 소개할 만큼 암릉 구간이 험준하다.
이번에 찾은 팔봉산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거칠고 깊은 인상을 준다. 푸른 산자락을 가르며 흐르는 홍천강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강을 내려다보는 암봉은 날카롭다. 바위와 소나무가 뒤엉킨 능선은 마치 거대한 용이 몸을 틀어 일어선 듯하고, 봉우리 사이에는 깊은 골이 형성돼 있다.
특히 팔봉산은 ‘음기가 강한 산’이라는 말이 전해 온다. 깊은 골짜기와 짙은 숲, 거대한 암벽, 그리고 산 아래를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다른 산과 확연히 다르다. 여기에 산 정상에 여성 신격을 모신 삼부인당(三婦人堂)까지 자리하고 있어, 팔봉산에는 오래전부터 독특한 민간신앙의 분위기가 형성돼 왔다.

팔봉산 정상인 제2봉에는 작은 기와집 형태의 삼부인당이 있다. 이곳에는 이씨·김씨·홍씨 세 부인을 모시며, 팔봉산 주변 주민들은 조선 선조 때부터 마을의 평온과 풍년을 빌고 액운을 막기 위한 당산제를 지내왔다고 전한다. 그 전통은 4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속 삼부인당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거친 암벽 위에 작고 소박하게 자리한 모습이 주변의 험준한 산세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바로 그 소박함 때문에 더욱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팔봉산의 매력은 이처럼 ‘아름다움과 두려움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에 있다.
홍천강을 바라보면 한 폭의 산수화처럼 평화롭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리면 칼날처럼 솟은 암봉과 깊은 절벽이 나타난다. 1봉에서 8봉까지 이어지는 길은 짧지만 곳곳에서 로프와 철계단을 이용해야 할 만큼 험하다. 특히 8봉 구간은 가장 험준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 초보자는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팔봉산은 단순히 ‘낮은 산’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높이는 낮지만 산의 기세는 높고, 면적은 작지만 골과 암벽이 깊다. 우리 조상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자연의 힘을 신으로 받아들이고, 산과 강의 경계에 신당을 세워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팔봉산 삼부인당 역시 그러한 오랜 민간신앙의 흔적이다. 매년 봄과 가을에 당산제를 지내며 산과 강에서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전통도 이어지고 있다.
팔봉산은 아름다운 산인 동시에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산이다. 푸른 홍천강과 울창한 숲은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지만, 거대한 암봉과 깊은 골짜기는 엄숙한 기운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4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작은 삼부인당이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팔봉산의 진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낮아서 만만한 산이 아니라, 낮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 자연의 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산.” 홍천 팔봉산은 오늘도 홍천강을 굽어보며, 여덟 개 암봉 사이로 오래된 신화와 사람들의 기원을 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