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의 릴레이 인터뷰 01]
30년간 몸으로 시대와 마주해 온 성백의 이야기를 듣다
퍼포먼스 아트는 본래 휘발적이다. 순간에 피어났다 사라지는 신체 행위를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재구성할 것인가. 부산문화재단 ‘2026 올해의 포커스온’ 작가로 선정된 성백의 아카이브 展 《신체의 증언, 경계를 넘는 메신저 : 2000~2026》은 이 오래된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성백은 약 30년간 자신의 몸을 매체로 삶과 죽음, 그리고 시대의 상처를 마주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성백 작가는 자신의 미학이 결핍에서 오는 서러움이라고 말한다.

예술동행자는 성백 작가를 만나 그가 지나온 시간과 작품 너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술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결코. 그러나 변화의 시작점, 변곡점은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 30년간 자신의 몸과 예술을 통해 시대와 마주해 온 성백 작가의 말이다. 개인의 상실에서 시작된 그의 시선은 삶과 죽음, 자연을 지나 전쟁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의 문제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퍼포먼스와 회화, 설치, 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성백 작가는 올해 부산문화재단의 ‘2026 올해의 포커스온’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이어온 작업을 되짚는 《성백 퍼포먼스 아카이브 展: 신체의 증언, 경계를 넘는 메신저 : 2000~2026》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축적된 퍼포먼스와 그 기록을 다시 한자리에 불러냈다.
무모함과 열정으로 새겨 넣은 청춘의 궤적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성백 작가는 20대부터 이어온 자신의 모습을 다시 마주했다. 과거의 자신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무모함’과 ‘열정’이었다.
성백 작가는 “과거의 나를 보니 정말 무모하리만큼 열정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 그런 작업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의 첫 개인전은 2000년 인터넷 실시간 라이브 퍼포먼스였다. 오늘날에는 익숙한 방식이지만 당시 인터넷 환경에서는 구현 자체가 쉽지 않은 시도였다.
처음 작업을 준비할 당시에는 인터넷 속도 문제로 실현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약 6개월간 준비하는 사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제 생중계가 가능해졌다.
성백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기술적 한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오히려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앞선 1999년에는 어머니의 기일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 《1999년 1월 29일 가족사》를 선보였다. 전시장 바닥에 흙을 깔고 그 위에 어머니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향하는 발자국을 남긴 작업이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당시 작품을 바라보면서도 규모와 완성도, 개념이 지금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언어를 뛰어넘는 매체, 몸과 현장의 에너지
성백 작가의 작업에서 ‘몸’은 오랜 시간 중요한 매체로 자리해 왔다. 다만 반드시 자신의 몸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활용해 현장을 연출하고, 식물과 신체를 결합한 ‘인체 설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가 몸이라는 매체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몸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어떤 것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은 언어가 다르면 이해할 수 없지만, 잘 표현된 몸의 언어는 언어를 떠나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 작품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없었음에도 외국인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던 경험이 있다. 성백 작가는 이를 ‘언어 이전의 몸짓’을 통해 작품을 이해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특히 세계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진행한 탁본 작업은 장소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다른 장소에서 재현하는 것과 실제 장벽이 존재했던 자리에서 몸으로 마주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에게 현장은 장소와 관객, 몸의 에너지가 동시에 발생하는 곳이다. 퍼포먼스와 그 결과물은 서로를 설명하고, 다시 서로의 의미를 확장한다.

openARTs: 순간, 흔적, 기록… 모든 경계를 허물다
이번 아카이브전에 소개할 작품을 선정하는 데에는 작품성뿐 아니라 ‘기록’도 중요한 기준이 됐다. 성백 작가는 2000년대 초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를 지나며 6mm 비디오테이프부터 디지털 영상까지 꾸준히 자신의 퍼포먼스를 기록해 왔다.
그러나 성백에게 기록은 단순히 지나간 퍼포먼스를 보존하는 자료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퍼포먼스에서는 먹을 뿜고, 두드리고, 던지는 신체의 행위가 일어난다. 행위가 끝난 자리에는 회화와 탁본 등의 흔적이 남고, 그 과정은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된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무엇이 ‘진짜 작품’일까. 성백 작가의 답은 명확했다.
“모든 게 다 작품이다.”
제작 과정의 행위를 퍼포먼스로, 그 결과물을 회화나 설치로, 이를 기록한 영상을 다시 하나의 영상 작품으로 바라본다. 각각의 장르를 구분하기보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결합하며 끊임없이 확장되는 일련의 예술을 그는 ‘openARTs’라고 부른다.
성백 작가는 “현장에서했던 과정은 퍼포먼스가 되고, 이후 남겨진 흔적이 전시된다면 하나의 회화 작품이 된다”며 “그 옆에 당시의 영상이나 사진이 함께 놓이면서 다시 현장성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세상의 죽음으로
성백 작가의 예술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젊은 나이에 마주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어머니를 자신의 방식으로 추모하고 기억하려 했던 작업은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시선은 자신 안에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향했다. 세월호 참사와 미얀마 민주화운동, 우크라이나 전쟁 등 동시대 사회가 겪는 상처가 그의 작업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미얀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오래된 인연이 있다. 2004년 일본의 국제행위예술제에서 만난 한 미얀마 작가는 한국의 과거 민주화운동 영상을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공연이 끝난 뒤 성백 작가가 현재의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뤄냈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미얀마의 꿈은 코리아”라고 답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미얀마에서 다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특히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한 시인이 참혹하게 희생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성백 작가는 더 이상 뉴스를 바라보는 데 그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예술가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예술가로서, 또 세계 시민으로서 가만히 뉴스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된 질문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삶과 죽음으로 확장됐다. “귀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술이 전쟁을 멈추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성백 작가는 오히려 단호했다. “예술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는 없다. 결코.” 그러나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변화의 시작점, 변화의 변곡점은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백 작가는 예술가가 사회의 시스템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질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작품으로 던지는 것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본다. 그에게 예술은 정답을 제시하거나 세상을 단번에 변화시키는 힘이라기보다, 당연하게 여겼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다.
치열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자"
이번 아카이브전을 통해 성백 작가는 20대, 30대, 40대의 자신을 한자리에서 마주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을 묻자 그는 먼저 “얼굴의 주름”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이어진 이야기는 지난 시간을 향했다. 20대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작업 세계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30대에는 그동안 쌓아온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작업에 몰두했다. 40대에는 세월호와 미얀마, 우크라이나 전쟁 등 사회적 문제와 온몸으로 마주했다.

성백 작가는 “그때의 성백을 보니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그때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 한마디를 건넨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20년 후, 30년 후도 나쁘지 않으니까 지금 열심히 살아. 네가 살아온 흔적들이야.”
새로운 경계, '영화'라는 실험을 향해
성백 작가는 앞으로도 ‘openARTs’의 개념을 바탕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는 실험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의 여러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역시 계속할 계획이다.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것은 영화다. 지금까지 축적한 퍼포먼스와 작품의 영상을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구성해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작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관객이 보면서 ‘이건 한 편의 다큐멘터리인가, 하나의 퍼포먼스인가, 퍼포먼스 영상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미술적 표현과 영화적 경험의 경계를 다시 흐리는 새로운 실험이다. 그는 이를 해외 독립영화제 등에도 선보이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2000년, 인터넷 실시간 생중계라는 당시로서는 낯선 방법으로 첫 개인전을 시작했던 성백. 약 30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관심은 완성된 하나의 장르 안에 머무는 것보다 그 경계를 넘어 다음 표현을 찾는 데 있다. 과거의 성백이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면, 현재의 성백은 그 길 위에 남겨진 흔적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마침표가 아니라, 다시 다음 작업으로 향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주자
성백 작가에게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문화예술인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성백 작가가 다음으로 지목한 사람은 15년 가까이 자신의 작업을 기록해 온 이재웅 영상작가였다.
이재웅 영상작가는 부산의 여러 작가와 전시를 영상으로 기록하며 문화예술 현장을 꾸준히 담아왔다. 성백 작가와도 오랜 시간 협업하며 그의 퍼포먼스와 작업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남겨왔다.
퍼포먼스는 작가의 몸이 작품이 되는 만큼, 정작 행위하는 작가 자신은 그 순간을 직접 기록하기 어렵다. 그런 성백 작가에게 오랜 시간 자신의 퍼포먼스를 기록해 온 이재웅 영상작가는 특별한 존재였다.
“정말 좋은 파트너예요.”
약 15년 동안 한 예술가의 곁에서 그의 순간을 기록해 온 사람.
‘은서의 릴레이 인터뷰’ 두 번째 이야기는 이재웅 영상작가에게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 글 | 최은서
예술동행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