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엔 정말 거짓말처럼 들리는 신화 같은 인화도 많고 소설 같은 대설도 흔히 있는 것 같다. 그 실례 하나 들어 보자. 이것은 외국의 실화이지만 이런 얘기는 고금동서 언제 어디에서나 있는가 보다.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여러 해 전 내가 영국에 살 때 영국 신문에서 본 기사이다.
92세 할아버지가 증손녀뻘 되는 20세 부인에게 임신까지 시킨 꿈같은 이야기다. 허비 알베르토는 3년 전 당시 17세의 처녀와 결혼하는 데 성공, 3년간 단꿈에 젖은 신혼생활 끝에 신부가 임신했다는 것이었다. 알베르토 노인과 신부 마리아의 만남은 마리아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자원봉사자로 포르트갈 수도 리스본의 한 병원에서 일하면서였다.
그는 당시 부인과 사별한 후 11년째 독신생활을 하던 중 욕조에서 미끄러져 엉덩뼈를 다치면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퇴원한 후에도 노인은 소녀의 따스한 손길과 포근 사근한 미소를 잊을 수 없어 수화기와 펜을 들었다. 전화와 편지로 그대는 내가 지금까지 본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넉살을 부렸다. 소녀는 노인이 의지할 데 없어 그러려니 생각하고 전화로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고 위로의 답장을 쓰게 되었다. 그러자 노인은 사랑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꽃과 선물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어요. 끝없이 보내오는 선물과 열정적인 구애에 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마음을 굳힌 마리아가 가족에게 자기 결심을 밝히자 그 반응은 불문가지였다. “네 할아버지가 되고도 남을 노인에게 시집가겠다니 말이 되느냐.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마음은 요지부동.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이 서로가 좋아 결혼하게 되었으나 마리아는 처음부터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책을 통해 남자 나이가 80이나 90세가 되면 정자 수가 크게 줄어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겪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밤만 되면 그는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침실에서 그는 젊음이 부럽지 않은 청춘이니까요.” 20세 부인의 말이다. “젊은이 이상으로 나에게 힘을 솟구치게 한 장본인은 바로 마리아이지요.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된 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라며 92세 남편 허비는 그의 굵은 엄지손가락을 꼿꼿이 고추 세워 싱글벙글 이란다.
1993년에 개봉된 미국영화 ‘잠 못 이루는 시애틀 남자’가 있다. 이 영화는 1957년에 개봉된 옛날 영화 ‘잊을 수 없는 일’에서처럼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극적으로 다룬 감동적인 로맨스 러브스토리다. ‘잊을 수 없는 일’에서는 남녀 주연배우 케리 그란트와 데보라 커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유람선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
러나 이들은 각기 약혼자가 있는 몸이다. 배의 행선지 미국에서 기다리는 상태였다. 배가 착륙하기 직전 두 사람은 6개월 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져 마중 나온 약혼자 품에 부자연스럽게 안긴다. 그동안 직업도 없이 백수건달로 살아 온 케리는 엄청난 유산상속녀를 마다하고 극장 간판 그림 그리는 일을 맡아 열심히 일하면서 틈틈이 옛날에 그가 그림을 좀 그려본 솜씨를 다시 살려 데보라의 초상화를 그린다.
한편 데보라는 그녀가 전에 나이트클럽에서 밤무대가수로 노래 부르다 만난 재벌 사업가 약혼자에게서 떠나 옛날의 무명가수생활로 돌아가 돈을 번다. 돈 없는 케리와 새 출발 하기 위해서다. 드디어 6개월이 지나 약속된 장소에서 케리가 밤늦도록 기다려도 데보라는 나타나지 않는다. 서둘러 급하게 달려오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바로 앞길에서 차에 치어 병원으로 실려 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케리는 실연당한 남자로 한동안 방황하던 끝에 전화번호부를 통해 데보라의 주소를 알아내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데보라를 찾아온다.
<잠 못 이루는 시애틀 남자>에서는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애틀에 사는 여덟 살짜리 남자 어린애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아빠의 부인될 사람을 좀 찾아달라고 호소한다. “왜? 엄마가 없느냐?”고 묻자 일 년 반 전에 그의 엄마가 세상 떠난 이후로 돌아가신 엄마만 생각하고 슬퍼하시며 너무 외로움을 타시는 아빠를 그가 더 이상 볼 수 없어서란다. 전국으로 전파된 이 생방송을 들은 미국 전 지역의 수많은 여성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편지를 보내온다.
그 가운데서 제 맘에 드는 여자를 딱 한 사람 골라 이 꼬마가 답장하기를 오는 2월 14일 성(聖) 밸런타인 날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자고 한다. 답장을 받은 여자는 또한 약혼자가 있는 볼티모어의 한 신문기자다. 아빠보고 같이 가자고 아무리 졸라도 아빠가 말을 안 듣자 꼬마는 제 저금통을 털고 그래도 모자라서 이웃에 사는 제 여자 친구 소꿉동무의 돈까지 얻어 겨우 비행기 표와 택시 값을 마련, 혼자 나타나 기다린다. 이 여자 저 여자의 이름을 물어 확인하면서.
여기자는 꼬마의 편지를 받아보았으나 어린애 장난으로만 여겨 잊고 있다가 마침 약혼한 남자로부터 결혼반지를 받고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창밖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불 켜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야경 속에 가슴 모양의 하트 그림이 뚜렷하게 돋보이는 순간 아차 저기서 어쩌면 그 어린애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결혼반지를 남자에게 되돌려주고 택시로 달려간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늦어 마지막 관광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다. 시간이 다 되었다고 못 올라가게 하는 직원에게 사정사정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니 전망대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연히 누가 놓고 간 어린 아이 배낭이 눈에 띄지 않는가. 열어보니 그 꼬마가 편지에 말한 곰 인형이 반기듯 튀어 나온다. 뒤늦게 꼬마가 없어진 것을 알고 뒤좇아 온 아빠가 꼬마를 안고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가 놓고 온 배낭을 찾으러 다시 올라온다. 인기 배우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의 연기가 정말 가슴 미어지도록 눈물을 짜낸다. 아, 그래서 프랑스어로 정사(情事), 로맨스를 ‘가슴의 일’이라 하나 보다.
세상 사람 누구도 자기가 좋아하지 않거나 믿지 못하는 물건을 그 아무에게도 팔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제 인격과 진심, 성실과 근면, 성심과 성의, 신뢰성과 신빙성을 담보로 제공할 수 없을 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아무에게도 팔 수 없으리라. 내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 일이다. 같은 학과에 들어 온 한 급우가 있었다. 장남인 그의 아버님께서 그 당시 ‘교육연감’인가를 출판하셨다가 실패하여 가세가 기울자 그는 등록금을 낼 수 없었다.
비록 ‘고학’하는 신세와 처지였지만 나는 힘 좀 자라는 대로 그를 도왔다. 등록금뿐만 아니라 그의 책값과 옷값 그리고 그의 데이트 자금까지 도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그는 나보고 그의 어머님께서 하시는 계가 있으니 들어 졸업할 때 목돈을 타라고 했다. 그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금액에다 여러 해(4년) 동안 장기적으로 48개월 곗돈을 매달 붓는 것이었다. 그런데 종국에 가서는 그 계가 ‘빵꾸’가 났다고 했다. 그 진위와 사실 여부를 규명해 보지도 않고 나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난 네가 나보다 또 세상 그 누구보다 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줄 알았었는데 어떻게 그토록 미련하고 헛똑똑할 수 있니? 네가 좀 더 약은 사람이었더라면 겨우 3~4년 나를 이용해 먹고 떨어지는 대신 내 평생토록 수십 배, 수백 배 날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안 됐다. 너야말로 값으로 칠 수 없는 그 어떤 보배보다 값진 ‘신용자산’을 내버리고 헌 딱지 몇 장 줍는 격이다.”
언젠가 조선일보 칼럼 필자 한 분이 지적한 대로 자기 은행구좌에 돈이 없는데 수표를 끊으면 부도가 나듯이 자기가 체험하거나, 느끼고 생각하며 믿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다른 필자 한 분이 한 예로 든 이야기에서 낚시꾼 노인의 어깨, 팔, 손등에도 앉던 새들이 그 노인이 새를 잡겠다고 ‘기심’을 품고 나간 날에는 한 마리의 새도 그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더라는 것 같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한 가지 일 것이다.
‘기심(機心)’ 또는 ‘기심(欺心)’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좋은 교훈인 것 같다. 애들이 아주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이 영국에 가 살면서 어찌나 영국 사람들이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게 또 그러면서도 정중하게 말들을 잘하는지 나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하루는 TV 아동프로를 아이들과 같이 보았다. 대여섯 살짜리 어린아이들이 나와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어린애들이 너무도 거침없이 어른들 뺨치게 말들을 잘하지 않겠는가. 말 잘하는 부모들 영향과 훈련을 잘 받아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 어린아이가 ‘정신적인 설사’란 문자를 썼다. 그 아이가 그 당시 그 말의 뜻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 단어를 썼는지 몰라도 나는 그 말을 듣기가 좀 거북했었다. 하기는 자기 자신 스스로도 잘 이해하거나 몸소 실천하지 못하는 소리를 늘 하고 사는 어른들도 너무 많지만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어떠한 말이나 행동도 결코 아무런 설득력이 있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우리가 누구의 잘못을 고쳐 주고 다른 사람을 돕고 인도하며 가르치려 하기 전에, 또 남에게 어떤 도움을 청하고 이해와 동정을 구하며 호의와 선의, 친절과 후의, 우정과 애정을 기대하기 전에 나 스스로 내가 먼저 많이 수양하고 덕을 쌓고 정을 쏟고 볼 일이다. 이것이 은행계좌에 잔고를 넉넉히 두어 어떠한 경우에도 부도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