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가죽공방 ‘필로에펠레(Filo e Pelle)’ |
최근 취미를 넘어 자신만의 기술을 배우고 직접 만드는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죽공예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직접 가죽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며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처럼 직장인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퇴근 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원데이클래스와 전문 취미교육에 대한 수요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의도 유일의 가죽공방이자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며 교육과 제작을 함께 이어가고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가죽공방 '필로에펠레(Filo e Pelle)'를 운영하는 홍상우 공방장은 가죽공예를 단순한 취미나 기술 습득이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평생 이어갈 수 있는 배움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사와이드경제신문은 홍 공방장을 만나 그의 인생 이야기와 교육 철학, 그리고 국내 가죽공예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필로에펠레는 여의도에서 유일하게 가죽공예 교육과 자체 브랜드 제작을 함께 운영하는 가죽공방이다. 공방 이름인 '필로에펠레'는 이탈리아어로 '실(Filo)'과 '가죽(Pelle)'을 의미한다. 단순히 어감이 좋아 선택한 이름이 아니라 공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료의 가치를 그대로 담아낸 이름이다.
![]() ▲ 사진 = 필로에펠레 |
홍 공방장은 "좋은 작품은 결국 좋은 재료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실제 공방에서 사용하는 가죽은 모두 이탈리아산 천연가죽이며, 봉제에 사용하는 실 역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산 린카블레(Lin Cable)를 사용하고 있다. 실 한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 색상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재료 선택에 타협하지 않는 것이 필로에펠레의 가장 큰 특징이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하지만 홍 공방장이 처음부터 가죽공예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의 학창 시절 대부분은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생화학을 전공하며 연구자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서 전공을 공부할수록 자신이 기대했던 학문과는 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 국제학생 신분으로 전과가 쉽지 않았던 그는 과감하게 한국행을 선택했고,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그가 다시 선택한 분야는 뜻밖에도 철학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철학 수업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는 그는 귀국 후 단국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고, 이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쳤다. 당시에는 박사과정까지 이어가며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이 자연스러운 미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코로나19 시기 미국에 거주하던 누나가 치료를 위해 한국에서 오랜 기간 머물게 되면서 함께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가죽공방을 찾게 된 것이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평소에도 가죽이라는 소재가 가진 질감과 깊이를 좋아했던 그는 건축을 전공한 누나와 함께 가죽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죽이라는 재료가 가진 매력에 빠져들었고, 독학으로 다양한 기법을 연구하며 주문 제작까지 시작하게 됐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시기에도 그의 관심은 점점 연구보다 가죽공예로 향하고 있었다.
"공부도 재미있었지만 어느 순간 가죽공예를 하는 시간이 더 기다려졌습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결국 그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이후 인연이 닿아 훌륭한 스승을 만나 체계적인 가죽공예 교육을 받게 됐고, 기본기와 제작 원리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 경험은 지금의 교육 철학을 만드는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이기도 했던 그는 현실적인 책임감과 자신의 적성을 함께 고민한 끝에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바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가죽공방 '필로에펠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홍 공방장은 필로에펠레를 단순히 가죽 제품을 판매하는 공방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가 진정으로 만들고 싶었던 공간은 누구나 가죽을 배우고, 이해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원하는 작품을 설계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었다.
그는 "좋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왜 그렇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며 "결과보다 과정을 제대로 배우는 교육이 결국 오래가는 실력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필로에펠레가 다른 가죽공방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교육 방식이다. 모든 수업을 한 타임에 한 명의 수강생에게만 집중하는 프라이빗 수업으로 진행해 수강생의 수준과 이해도, 제작하고 싶은 작품에 맞춰 세밀하게 지도한다.
그래서 그의 수업은 단순히 강사가 만든 작품을 따라 만드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부터 패턴 제작, 재단, 보강, 바느질, 마감까지 전 과정을 이해하도록 지도하며, 수강생이 공방을 떠난 이후에도 스스로 원하는 작품을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특히 가죽공예를 '건축의 단순한 버전'이라고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교육 전반에도 반영돼 있다. 건축이 사람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라면 가죽공예는 사람을 위한 물건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건축의 설계도와 마찬가지로 가죽공예 역시 모든 제작 과정이 패턴과 도안 단계에서 이미 계산돼야 하며, 결국 좋은 가죽공예는 손기술보다 설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제작 노하우를 숨기지 않는 교육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는 "기술을 감추는 문화가 아직도 업계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배우러 온 사람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결국 가죽공예를 오래 즐기기 어렵고, 이는 업계 전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 사진 = 필로에펠레 |
실제로 필로에펠레에는 가죽공예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뿐 아니라 이미 다른 공방에서 수업을 듣거나 독학으로 실력을 쌓은 경험자들도 적지 않게 찾아온다. 이들은 대부분 기본기를 더욱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거나, 독학 과정에서 느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방의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홍 공방장은 이러한 수강생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저 역시 독학을 하며 한계를 느꼈고,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 비로소 제작 원리와 기본기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배운 것은 가능한 한 모두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 ▲ 사진 = 필로에펠레 |
그의 교육 철학은 커리큘럼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필로에펠레에서는 가죽공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원데이클래스와 보다 깊이 있는 기술을 배우는 정규과정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원데이클래스에서는 키링과 카드지갑, 명함지갑 등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가죽소품을 제작하며 가죽공예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 특성상 퇴근 후 취미를 찾는 수강생이나 특별한 데이트 코스를 원하는 커플들에게도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반면 정규과정은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첫 한 달 동안은 다양한 핵심 기술이 담긴 소품을 제작하며 기본기를 익히고, 이후에는 수강생이 직접 만들고 싶은 작품을 선정해 디자인부터 패턴 제작, 재단, 바느질, 마감까지 전 과정을 함께 진행한다. 가방이나 지갑, 다양한 가죽소품은 물론 개인 브랜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죽가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홍 공방장의 설명은 달랐다. 작품의 구조와 난이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단순한 가방은 일주일 이내에도 제작이 가능하고, 구조가 복잡한 작품도 약 세 달 정도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로에펠레에서 교육을 받은 수강생 가운데에는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거나 전문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례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제품을 바라보는 그의 디자인 철학 역시 분명하다.
홍 공방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름다움보다 기능과 내구성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남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철학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가죽공예 역시 작은 건축과 같다는 그의 생각처럼, 제품의 형태는 단순히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 구조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죽공예는 사람을 위한 물건을 설계하는 일"이라며 "모든 과정은 패턴에서부터 계산돼야 하고, 손기술은 그 설계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또한 제품이 사용자를 압도하거나 과시하기보다는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하면서 오히려 사용자를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디자인 기준이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제품의 본질에 집중하고, 아름다움과 기능, 내구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오래 사용할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가죽공예다.
앞으로의 목표도 단순히 가죽 제품을 많이 판매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홍 공방장은 "가죽을 제대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교육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더 큰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도 직접 교육 내용을 정리하며 교재를 집필하고 있으며, 누구나 체계적으로 가죽공예를 배울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이다. 제품 판매보다 교육 콘텐츠와 커리큘럼을 더욱 발전시켜 국내 가죽공예 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아울러 그는 국내 가죽공예 시장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업계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죽공예를 하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도 지금보다 훨씬 활성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공방들이 핵심 기술을 숨기기보다 함께 공유하면서 수강생들이 더 많이 배우고, 또 그분들이 주변에 가죽공예의 즐거움을 알리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 가죽문화도 지금보다 훨씬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사진 = 필로에펠레 |
그가 말하는 가죽의 가장 큰 매력은 '에이징(Aging)'이다.
대부분의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가죽은 사용할수록 사용자의 생활 방식과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더욱 깊은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같은 제품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만큼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 사진 = 필로에펠레 |
홍 공방장은 "가죽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소재"라며 "오랫동안 사용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점이 다른 소재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꼭 필로에펠레가 아니더라도 아직 가죽공예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즐거움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며 "직접 만드는 과정 속에서 물건의 가치뿐 아니라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하는 성취감도 함께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사진 =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홍상우 공방장 |
이번 취재를 통해 만난 홍상우 공방장은 단순히 가죽 제품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배움을 나누는 교육자에 가까웠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도, 제작 원리를 끝까지 설명하는 이유도, 기술을 숨기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가죽공예를 제대로 배우고 오래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여의도 한편에서 시작된 이러한 철학이 앞으로 국내 가죽공예 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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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가죽공방 '필로에펠레'의 원데이클래스와 정규 교육과정, 자체 제작 작품 및 다양한 브랜드 소식은 공식 인스타그램(필로에펠레 여의도가죽공방)과 네이버 플레이스(필로에펠레 네이버지도)를 통해 더욱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