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이름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계급 지도가 그려진다. 대학 시절 공부는 남의 일처럼 뒷전에 두고 연애에만 몰두하던 한 친구는 지금 40억짜리 강남 아파트에 산다. 부모의 재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어느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어느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물었다.
“강남 아파트에 사니 좋니?”
친구는 잔을 기울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폼나잖니, 모두가 부러워하고…”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친구가 사는 강원도의 작은 전원주택을 떠올렸다. 사계절이 아름답다지만, 가격은 4억 원 남짓…… 그 친구는 누구보다도 숨이 차도록 성실히 열심히 살아왔는데, 대가가 겨우 이 정도라니……,
“그 친구는 실패자인가, 아니면 이 사회가 실패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햇볕마저 따사로운 강남 아파트는 한국인들의 무릉도원이다. 그러나 그곳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낙원이 아니다. 부자들만의 카르텔, 그들만의 리그, 강남스타일은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현실의 계급 댄스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는 서민들은 발버둥 치다 결국 포기하고 만다. 사다리가 이미 부서졌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현실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날아오르지 못하고, 개천은 오르지 못한 꿈들의 무덤이 되어 버렸다.
정치인들은 서민의 표를 얻어 권력을 잡는다. 그러나 권력을 쥔 순간부터 서민은 안중에도 없다. 자본과 로비가 정치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서민은 그저 들러리, 장식품, 숫자에 불과하다. 돈은 돌고 돈다지만, 그 돈은 늘 같은 집안, 같은 계급 안에서만 돌고 돌 뿐, 서민들의 손에서는 절대 돌지 않는다. 그런데 가난은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된 설계 탓이다. 부자들은 부를 대물림하고, 가난한 자들은 고단함과 가난을 대물림한다.
강남 아파트는 단순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상징, 계급의 증명서다. 평수는 곧 사회적 지위의 가늠자이며, 40억짜리 아파트는 “나는 성공자, 너는 패배자”라는 낙인의 도장이다. ‘성실’이 더 이상 미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패배자의 증거로 치부되는 씁쓸한 사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그런데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불평등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죽을 때야 비로소 평등해지는 현실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 그것은 단순히 친구가 40억짜리 강남 아파트에 살아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이미 공정의 사다리를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는 오늘도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 빛은 화려하지만, 서민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빛이다. 그 뒤의 그림자는 서민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부자들은 그 빛 속에서 웃음을 짓지만, 서민들은 그 그림자 속에서 눈물을 삼킨다. 강남 아파트는 한국 사회 피라미드 꼭대기에 놓인 황금빛 돌처럼 보인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강남 아파트에 사는 것이 성공일까? 전원주택에 사는 것은 실패일까?”
집의 위치와 평수로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는 사회야말로 진정 실패한 사회다. 강남 아파트는 부자들의 성이지만 동시에 서민들의 감옥이다. 그 성은 높아 오르기 어렵고, 그 감옥은 깊어 벗어나기 힘들다.
오늘도 강남 아파트는 빛난다. 그러나 그 빛은 서민들의 좌절과 박탈감 위에서 만들어진 성이다. 화려한 외벽 뒤에는 수많은 눈물과 희생이 겹겹이 쌓여 있다. 진정한 성공은 아파트의 평수나 위치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언젠가 그 빛이 불평등의 상징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평등의 빛으로 변하길 기대해 보지만, 어쩌면 그것은 나만의 어리석은 희망 사항일지도 모르겠다.
[이윤배]
(현)조선대 AI·SW 학부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