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한 박현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시산맥 51차 기획시선 공모당선 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박현구의 시선은 중심보다 가장자리를 향한다. 사라져가는 풍경, 늙어가는 몸, 병든 육체, 빈집, 지팡이, 가묘, 입가에 붙은 참깨 한 알 같은 작은 사물과 오래 머문다. 그는 거대한 역사나 이념보다 한 인간의 생애를 깊이 응시한다. 어머니와 외할머니, 늙은 아내와 전쟁을 통과한 아버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보여준다.
『눈먼 참깨 떼먹기』의 가장 큰 힘은 평범함의 복원에 있다. 참깨는 사랑이 되고, 지팡이는 생애가 되며, 자루는 역사가 되고, 낡은 폐가는 기억의 궁전이 된다. 시인은 사물의 표면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든 시간을 읽는다. 이 시집은 한 인간이 살아오며 만난 시간들의 연대기이며, 노년이라는 계절을 건너가는 존재의 기록이고,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깊은 애도의 서사이다. 나이들면서 깨달은 삶의 지침을 찬찬히 읽어볼 수는 시집이다.
[전문가 서평]
『눈먼 참깨 떼먹기』의 가장 큰 성취는 생활과 존재를 연결한 데 있다. 생활의 구체성과 존재의 깊이가 만나면서 시는 단순한 일상을 넘어 인간학적 성찰의 경지에 이른다. 시집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참깨 한 알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있고, 아내가 있으며, 가난과 노년, 사랑과 죽음, 한 사람의 생애와 한 시대의 기억이 함께 들어 있다. 박현구는 가장 작은 것을 통해 가장 큰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눈먼 참깨 떼먹기』는 읽고 덮는 시집이 아니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며 우리에게 묻는다.
삶은 무엇으로 남는가.
사랑은 어디에 머무는가.
인간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박현구의 시는 그 질문 곁에 오래 앉아 있는 따뜻한 언어의 집이다.
- 청람 김왕식(시인ㆍ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엊그제 세일러복을 벗은 찔레가
황록색 망토 걸친 동박새를 바라보며 치맛자락을 펄럭였을 때,
나의 앞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씰크 등을 가진 여자도
손이 많이 가는 남자도
꿈통 위의 대代 이은 승부도
세 발 달린 짐승을 보고 웃던 바로 그 눈빛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여인의 역사조차
미래는 어느새 알고 있었다.
내 모든 시구마저 쓰여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