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졸음, 정말 춘곤증 탓일까?


따스한 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우리 몸을 노크하는 불청객이 있다. 밥만 먹으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증상,‘춘곤증(Spring Fatigue)’이다. 춘곤증은 흔히 길어진 낮과 기온 변화에 신체가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생리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이러한 증상은 국경과 문화를 넘나들며 나타난다. 독일, 스위스 등 유럽어권에서는 ‘Frühjahrsmüdigkeit(봄철 피로)’, 중국에서는 우리와 한자까지 똑같은 ‘춘곤(春困)’이라는 단어를 쓰며 봄철 특유의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그런데 최근 이 증상이 사실 우리 뇌가 만들어 낸 ‘문화적 착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봄철 춘곤증, 그저 문화적 착각이다?

사진 1. 봄마다 나타나는 춘곤증이 생물학적 현상이 아닌, 문화적 착각일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클립아트 코리아

스위스 바젤대 크리스틴 블루메 교수, 베른대 알브레히트 포르스터 박사 공동 연구팀은춘곤증에 대해 “생리학적 질환이나 실제 계절성 증후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들의 연구는 2026년 3월 국제학술지 <수면 연구 저널(Journal of Sleep Research)>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춘곤증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2024년 4월부터 2025년 9월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건강한 성인 418명을 대상으로 6주 간격으로 수면의 질, 피로도, 불면증 증상을 반복 측정했다. 실험 시작 전, 참가자 47%는 “봄철 피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1년간 축적된 실제 수면 관련 데이터는 참가자들의 주관적 호소와 완전히 달랐다. 분석 결과, 놀라울 만큼 봄의 도래와 피로도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사진 2. 연구팀은 (A) 낮의 길이, (B) 월별, (C) 계절별 세 가지 변수에 따른 '피로 심각도 척도(FSS)'를 분석했으나, 세 변수 모두 피로도 변화와의 유의미한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 C. Blume et al., Journal of Sleep Research, 2026

연구팀에 따르면 피로도, 주간 졸음, 불면증 지표 모두 계절과 무관하게 1년 내내 평탄한 수준을 유지했다. “일조량변화 속도에 생체 리듬이 쫓아가지 못해 피로를 느낀다”는 기존 가설은 실제 데이터 앞에서 근거를 잃은 셈이다.

 

춘곤증의 진짜 원인, 문화적 기대심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독 봄만 되면 더 피곤하다고 느낄까? 연구팀은 그 원인을 호르몬 변화가 아닌 문화적 영향으로 바라보았다.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더 활동적이어야 한다’, ‘좋은 날씨를 만끽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심리적 기대치가 형성된다. 반면, 우리 몸은 연초부터 쌓여온 업무 스트레스와 만성적인 수면 부족,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생활 습관 때문에 그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로 인해 높아진 기대치와 고갈된 실제 에너지 사이 간극이 봄에 유독 크게 와닿는 셈이다.

 

어쩌면 이번 연구 결과는 일조량 핑계를 대던 현대인에게 냉정한 사실을 제시하는 것일지 모른다. 계절에 따른 일조량 변화가 신진대사에 미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도,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피로감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따뜻한 봄바람에 꾸벅꾸벅 조는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면, 달력을 보기 전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자. 어젯밤 충분히 잤는지, 요즘 스트레스가 과도하지는 않은지. 봄은 당신의 피로에 아무 책임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춘곤증이라는 편리한 변명이 아니라, 규칙적인 숙면과 나 자신을 향한 솔직한 점검이다.

 

[용어 풀이]

1) 춘곤증 :계절이 봄으로 변화하면서 피로감, 졸음, 의욕없음 등을 경험하는 현상.

2) 일조량 :햇볕이 물체의 표면이나 지표면에 비치는 양

[참고자료]

▶No Evidence for Seasonal Variations in Fatigue, Sleepiness and Insomnia Symptoms: Spring Fatigue Is a Cultural Phenomenon Rather Than a Seasonal Syndrome(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sr.70319)

 

글 :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작성 2026.09.16 08:55 수정 2026.09.1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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